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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5563조원 규모' 금융기관 112곳의 탄소중립 선언

입력 2021-03-15 09:32 수정 2021-03-18 15:5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9)

지난 9일, 국내 금융기관 112곳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적극 지지하고, '기후금융'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겁니다.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 규모의 합은 5563조 5천억원에 달합니다. KB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삼성증권 등 민간 금융기관을 비롯해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 한국교직원공제회,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은 탄소중립 지지를 넘어 '탈석탄 선언'을 했습니다.




이들 금융기관은 크게 '6대 약속'을 내걸었습니다.

① 2050 탄소중립 적극지지
② 금융 비즈니스 전반에 기후리스크를 비롯한 ESG 요소 적극 통합
③ 기후변화 관련 국제적인 기준의 정보공개 및 이에 따른 재무 정보공개에 적극 노력
④ 대상 기업에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 정보공개 적극 요구
⑤ 다양한 기후행동으로 고탄소 산업에서 탈탄소 산업으로 자본 유입에 적극 노력
⑥ 기후변화 대응 관련 다양한 금융상품 출시

#이미_국제표준_된_탄소중립
혹시나 '정부가 탄소중립, 그린뉴딜 선언하더니 어쩔 수 없이 금융기관들이 눈치 보느라 뛰어드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금융기관들에게 있어 탄소중립, 탈석탄은 '표준'이 된 상태입니다. 단순히 금융기관의 투자 방향만 온실가스 저감, 탈석탄으로 설정된 것이 아닙니다. 아예 기관 스스로 RE100에 가입할 정도입니다. 회사 운영 자체를 100% 재생에너지로 한다는 거죠.

RE100엔 그저 제조업 분야의 기업만 가입한 것이 아닙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알리안츠 그룹, 아비바, 악사, 뱅크 오스트레일리아, 바클레이스, BBVA, 캐피탈 원, 시티, 코메르츠뱅크, 호주 커먼웰스은행, 프랑스 크레디 아그리꼴, DBS 은행, 골드먼삭스, HSBC, ING, JP모건, 로이즈 은행, 마스터카드, 모건 스탠리, 영국 RBS… 다수의 금융기관이 RE100에 가입하고, 이미 사용중인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거나 그러기를 앞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지지 선언문'을 발표한 국내 금융기관 112곳 역시 이같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흐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선언문에서도 보다 명확히 나와있죠.

"탄소중립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인류의 공멸을 막고자 하는 기후과학의 명령이자,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경제·사회질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회원국 등 전 세계의 국가는 물론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탄소중립 선언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화답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금융'은 핵심이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자본의 흐름을 재조정하고, 리스크 관리에서 지속가능성을 주류화하며, 금융과 산업 활동에서 투명성과 장기주의를 촉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건 바로 이를 자각한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금융기관이 직면한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ESG 이슈이며,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지와 실천은 국제적인 상식이 되었다."
"우리 금융기관들은 오늘, '기후금융'이라는 이 국제적인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웅변(雄辯)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오늘 미처 동참하지 못한 민간과 공적금융 기관들도 함께 해주기를 요청한다."

"실패한 사회에서 모든 비즈니스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만_무시했던_경고
지금으로부터 약 1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그린 스완: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1월 발표된 그린 스완 보고서 (자료: BIS)2020년 1월 발표된 그린 스완 보고서 (자료: BIS)


화이트 스완이나 블랙 스완은 들어봤어도 '웬 그린 스완?'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미 그린 스완의 위험성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거론된지 오래고, 이에 대응한 발빠른 움직임이 잇따랐습니다. 그럼에도 2021년 3월이 되어서야 국내 금융기관들이 탄소중립 선언을 했으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듯 합니다.

그린 스완(Green Swan, 녹색 백조)은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의 '파괴적 위기'를 의미합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경우 블랙 스완이라고 불렸죠. 이 블랙 스완과 그린 스완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블랙 스완의 경우, '경제 전문가'가 바로 분석과 해결책을 내놓는 이들이었지만 그린 스완은 '경제 전문가'만으론 예측도 해결도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유능한 애널리스트도,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도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극단적 이상 기상 현상을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요.

BIS는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각국 중앙은행들과 규제 당국, 감독 기관 등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며 "중앙은행만으론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없다. 이는 각계각층의 복잡한 행동의 문제로,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와 국제사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서로 조율된, 협력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경제에 있어 수요와 공급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BIS는 세부적으로 투자, 소비, 무역, 노동력 공급, 에너지와 식량, 자본금, 기술 등이 겪게될 충격을 예측했습니다.

기후 리스크의 불확실성 증대로 투자가 위축되며 일반 가정들이 홍수 등의 피해가 늘어 소비도 줄어들고, 바다와 하늘에서의 이상 기상 현상으로 수출입에도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게 BIS의 설명입니다. 또, 극단적인 재난재해의 증가로 근무 가능 시간이 줄어 노동력 공급에 손실이 발생하고, 식량 생산성이 떨어지며 식량 부족 현상이 빚어질뿐더러 극한의 이상 기상 현상은 자본를 손상시키며, 각종 사회적, 경제적 리소스가 기술의 개발보다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의 재건이나 수리에 투입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 보고서가 나오고 불과 몇 달 뒤, 추가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이 보고서가 나오고 14개월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행동'이 나왔고요.

선언문 전문과 함께 이번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더 이상 기후변화 대응은, 탄소중립은, 돈 쓰는 일이 아닙니다. 버는 일입니다.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지키는 일입니다. 북극곰 살 곳 걱정하는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앞 날, 길게는 '목숨'을, 짧게는 '지갑'을 걱정하는 일입니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지 선언문〉

전 세계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격동기에 직면해 있다.

배제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고 탄소 사회에서 탈 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은 이러한 시대 전환을 대변하는 키워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 탄소'는 이러한 전환을 강력하게 추동하는 기관차이며, COVID-19 팬데믹(pandemic)은 이를 가속화 하는 계기다.

기후위기는 인류와 다양한 생물종의 대멸절(great dying)을 초래할 전 지구적 위협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체결은 지속가능성 위협에 대한 인류의 다급한 대응이다. IPCC는 기후위기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하여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엄중 경고한다.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순 제로(net-zero) 배출, 즉 '탄소중립'을 반드시 달성해야만 한다고 제시한다. 탄소중립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인류의 공멸을 막고자 하는 기후과학의 명령이자,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경제·사회질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회원국 등 전 세계의 국가는 물론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탄소중립 선언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화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확정하여 발표하는 등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닻을 올렸다.

사회 변화의 핵심 동력 중 하나는 바로 자본의 이동이다. 자본이 고 탄소 산업에서 저 탄소, 궁극적으로는 탈 탄소 산업에 대규모로, 그리고 빠른 속도로 유입되어야만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때문에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금융'은 핵심이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자본의 흐름을 재조정하고, 리스크 관리에서 지속가능성을 주류화하며, 금융과 산업 활동에서 투명성과 장기주의를 촉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건 바로 이를 자각한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하여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금융안정 관련 국제기구들은 '그린스완'(green swan)을 경고하며,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 포스인 TCFD, 금융시스템을 녹색화 하고자 하는 녹색금융네트워크인 NGFS를 내놓으며 기후금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투자자를 대변하는 7개 글로벌 기관들(PRI, CDP, UNEP FI, IGCC, IIGCC, AIGCC, Ceres)의 협력 이니셔티브인 '투자자 어젠다'(Investor Agenda)는 금융기관들에게 탈석탄 투자(Investment), CDP 서명을 통한 정보공개 요구(Corporate Engagement), TCFD 지표에 따른 투자자 정보공개(Investor Disclosure), 기후위기 관련 정책지지(Policy Advocacy)이라는 4대 중점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인 '1.5℃ 기후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금융기관이 직면한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ESG 이슈이며,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지와 실천은 국제적인 상식이 되었다.

우리 금융기관들은 오늘, '기후금융'이라는 이 국제적인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웅변(雄辯)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 시대의 방관자나 수동적 대응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가가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제 시작 단계인 우리나라의 기후금융 수준과 속도를 높이고,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험난한 항해의 물길을 주체적으로 열어가고자 한다. 오늘 미처 동참하지 못한 민간과 공적금융 기관들도 함께 해주기를 요청한다. 아울러 우리 금융기관들이 이러한 시대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를 고려한 시장친화적인 법과 제도와 정책들이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 속에 만들어 지기를 기대한다.

실패한 사회에서 모든 비즈니스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신념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지'를 선언하고 각 금융기관마다 자사의 여건에 부합하는 기후금융 실천을 약속한다.

우리의 약속

하나, 우리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하여 '2050 탄소중립'을 적극 지지한다.
하나, 우리는 투자, 대출, 보험 등 금융 비즈니스 전반에 기후리스크를 비롯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적극 통합한다.
하나, 우리는 기후변화 관련 국제적인 기준의 정보공개를 지지하고 이에 따른 재무정보공개에 최선을 다한다.
하나, 우리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개를 대상기업에 적극 요구한다.
하나, 우리는 투자, 기업관여, 정보공개, 정책지지 등 다양한 기후행동을 통하여 자본이 고탄소 산업에서 저탄소, 궁극적으로 탈탄소 산업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하나, 우리는 고객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 관련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책임성과 투명성의 원칙하에 설계하고 출시한다.

2021년 3월 9일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지 선언 참여기관 일동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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