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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때 일본 군수공장 끌려가…사과 못 받고 떠난 주금용 할머니

입력 2024-03-18 15:47 수정 2024-03-18 18:10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주금용 할머니 빈소.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주금용 할머니 빈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주금용 할머니가 어제(17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96세입니다.

주 할머니는 1927년 10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6세였던 1942년 2월, 일본 도야마에 있는 군수회사 후지코시에 강제 동원됐습니다. 후지코시는 조선인 소녀들을 가장 많이 데려간 일본 군수기업니다. 알려진 것만 1089명입니다.

"나주대정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다. 일본인 선생이 '돈도 벌고 좋다'고 해서 가게 됐다. 진짜 좋아서 갔겠나. 안 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 어메는 '애린 것이 거기까지 가서 뭔 돈을 벌어야?' 하고 울었다. 나도 울었다. 새벽에 나주 기차역으로 나가니 불도 없고 캄캄했다. 곳같 같은 곳에 타서는 이끄는 대로 갔다."
구술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꽃 핥아먹었지』(2020년 ) 중 각색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관련 자료.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관련 자료.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주 할머니는 여기서 군수품에 사용되는 금속 제품을 다루는 일을 했습니다. 쇠토막 끝부분을 동그랗게 깎는 작업이었습니다. 3년 동안 일했지만 품삯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밥하고 국이 요만씩 나오는데 김치 쪼가리도 구경 못 했다. 고놈 묵고, 자고, 날마다 가서 쇠만 깎았다. 돈은 10원도 못 받았다. 집에 편지도 못 썼다. 종이도 연필도 없었다.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써서 붙이려면 돈이 있어야지. 아무것도 없는 빈 몸뚱이였다.”
구술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2020년 ) 중 각색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탈출은 불가능했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일하면서 버텼다고 했습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또래 아이들과 신세 한탄하며 불렀던 노래를 최근까지 또렷하게 기억할 정도로, 할머니는 평생 강제노동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전했습니다.

"후지코시 요이또 타레가 유따아(후지코시 좋다고 누가 말했나). 사쿠라 고까 께노 키노 시다떼(사쿠라 나무 그늘 아래서) 진지노 기무라가 유따 소다(인사과 기무라가 말한 듯 하다) 와따시와 맘마토 미마사례다(나는 감쪽같이 속았다)."
구술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2020년 ) 중 각색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관련 자료.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관련 자료.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할머니는 1945년, 광복이 된 뒤에도 몇달을 일본에 머물다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패망한 일본의 행정체계가 무너지고, 귀국하려는 조선인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돌아갈 배편을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4남 2녀를 두고 평범하게 살아갔지만, 할머니는 근로정신대라는 선입견에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뉴스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활동 소식을 접하고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리게 됐습니다.

고 주금용 할머니.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고 주금용 할머니. 〈사진=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지난 2019년 주 할머니를 대신해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 등으로 5년째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2019년, 2020년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사건은 총 15건, 원고는 87명입니다. 생존자는 이날 기준 2명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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